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미국 회사와 한국 회사에서의 고과 결과에 대한 의미 차이

미국의 백발이 성성한 엔지니어를 부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의 산업은 기술적 깊이를 높인다기보다 미국의 대부분 새로운 기술을 빨리 도입해서 적용 통합하는 것이 많아서 젊은 사람이 훨씬 좋은 경쟁력을 보유할수 밖에 없는 경우들이 많다.

그런데 직무 상의 특성 이외에도 문화적인 차이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정서로는 나이가 들고 경력이 늘어나면 당연히 승진을 하거나 급여가 올라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은 회사에 따라서 인사 적체가 심해져서 우리나라에서도 승진을 시도하지 않고 (특히 임원으로 가느냐 직원으로 버티느냐) 제자리에 안정적으로 머물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적어도 내가 한국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경력 년수가 쌓이는데도 급여가 오르지 않거나, 입사 동기나 후배가 먼저 승진하면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를 많이 보았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백발이 성성한 엔지니어들이 있기는 한데, 내 주변에서는 본적이 없다. 말 그대로 백발의 엔지니어들이 있기는 한데 40대 중후반에 흰 머리가 많은 경우. 사실 회사가 설립된지 15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는데, 대부분은 나이가 들면 매니저로 올라가거나 매니저 성격을 겸한 엔지니어 역할을 하거나 아니면 자기 영역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40이 넘으면 individual contributor로서의 입지가 매우 좁아지는 한국과는 다르게 (기억을 떠올려보니 30중반에 매니저 역할에 대한 압력이 엄청났었다) , 그 역할을 인정해주는 것은 명백한 차이인 듯 하다. 대신 평가는 냉혹해서 나이가 많다고 경력이 오래되었다고 더 가산점을 주는 일은 없다.

어제 나의 인사 고과 결과(perf review)에 대해서 매니저와 이야기를 하던 중 "너는 승진하기를 원하니? 아니면 현재의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를 원하니?"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마도 예전 한국에서였다면 치욕적인 질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직원으로서 승진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승진하는 경우에 어떤 일들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잠깐 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느낌이 혼자 individual contributor로서의 위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면 50의 일을 한다면, 승진하기 위해서는 100정도의 일을 해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주변에서 승진한 사람들을 보면 100 정도의 일을 한다 - 언제나 그렇지는 않지만 승진하면 너무 업무량이 과중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있다.

매니저의 질문을 받기 전 까지 내가 고과 결과를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는 학창시절의 성적표를 받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내가 반에서 몇 등하는지, 우등생인지 아니면 중간인지 열등생인지를 판정받는 의미라고 할까? 사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도, 좋은 고과를 받으면 우월감에 기쁘고 상당수가 받는 중간 수준의 고과를 받으면 뒤쳐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승진 여부를 떠나서 내가 50점인지 75점인지 100점인지가 중요했었다. 그런데 매니저의 질문을 듣고 나니, 승진을 한다면 75점을 받고 더 분발해야 겠지만, 승진이 목표가 아니라면 75점을 받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을수 있어 보였다. 물론 내년 급여에 영향을 주지만 승진없이 급여가 많이 오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승진이 목표가 아니라면 50점을 받고 편하게 지내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의미. 물론 이 의미 해석은 내 개인적인 것일뿐 미국 회사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에 일반화 할 수는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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